일상기록
[미국 수련 이야기] 2년차의 첫 내과 병동
1년차 인턴의 업무와 2년차 레지던트의 업무는 다르다. 나는 과연 잘 적응하고 있는가?
어제부로 3주간의 내과 병동 로테이션을 마치고 외래 주간에 돌입했다.
인턴으로서 병동을 돌 때에는 주어지는 일을 처리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실질적인 환자 케어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 할 여유가 부족했던 것 같다. 경과기록을 자세히 적어야 하는 미국 특성 상 기록에 신경을 쓰느라 실질적 치료과정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의사결정 과정은 인턴을 통하지 않고 이루어지기에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던 듯 하다. 하지만 이제 2년차로서 병동 로테이션을 도니 진료과정에서의 의사 결정에 더 깊이 관여하게 되고, 이전보다는 수월하게 진료과정을 따라 갈 수 있었다. 첫 병동 로테이션이라 부족한 점은 많았겠지만 앞으로 장차 나아지리라 기대하고 있다.
내과 레지던트의 병동 업무는 쉽게 말해 병동의 운영이다. 환자의 입원부터, 입원 사유에 따르 적절한 치료, 치료 경과 및 퇴원 가능 여부의 판단, 그리고 환자는 퇴원시키는 일까지 (입원전담전문의 어텐딩과의 상의 후 결정하게 되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책임지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일어나야 하는 일들 (적절한 검사, 처치 등)이 제 시간에 제 때 이뤄지도록 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미국 병원들은 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 제도가 잘 정립되어있다. 환자가 퇴원을 한다면 환자가 집에 갈 수 있는 상태인지, 아니면 1인 이상의 도움이 필요한지, 도움이 필요하다면 방문 서비스로 충분한지 아니면 재활을 필요로 하는지, 재활병원이나 요양원에 가게 된다면 그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판단해주는 분들이 계시고, 그런 분들과 소통하며 환자들의 퇴원 장소를 조율하는 일 역시 레지던트의 업무 중 하나이다. (물론 이런 부분은 병원마다 차이가 있을 순 있겠지만..)
역시 병원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 병원의 경우 병동 팀은 1명의 입원전담전문의 어텐딩 아래 1명의 레지던트와, 그리고 1명의 인턴으로 구성된다. 각 팀 당 최대 14명의 환자를 보게 되고, 이 수를 초과하는 경우에는 어텐딩이 초과분의 환자를 가져가게 된다.
입원 환자들은 많은 경우 단기간 (2-3일) 동안의 치료를 받고 퇴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사회적인 이유로 (가입 한 보험이 퇴원 후 가야 하는 재활병원을 커버하지 않는 등) 입원이 길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루에 보통 3~4명씩의 환자가 새로 입원하고 그 이하/이상의 환자가 퇴원한다. 따라서 누가 퇴원 할 정도로 회복되었는지, 퇴원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필연적으로 고민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 요령이나, 상태를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등을 고민하게 된다. 임상적인 지식이 가장 잘 활용되는 부분 역시 이 부분이다. 환자를 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내 지식이 일천한 부분을 발견하게 되고, 이런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알았으면 더 좋았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으로 계속해서 발전이 필요한 부분이다.
어쩌다 보니 내과 병동 업무에 대한 전반적인 개괄이 되어 버렸는데 이 이야기를 하려고 글을 쓴 건 아니다. 그냥 이번 3주간 일을 하다 보니 나쁜 소식을 전하게 될 일이 몇번 있었어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몇 마디 적다 보니 여기까지 와버렸다.
내과 레지던트로 일하며 익숙해지지 않는 일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goals of care discussion”이다. 한국어로는 정확히 어떻게 옮겨야 할 지 모르겠는데, 예후가 나쁜 환자에서 더 이상의 공격적 치료가 가져오는 실익이 크지 않다 생각되는 경우 시행하는 환자 본인 및 보호자와의 면담이다. 환자의 대리인 (health care proxy)과 함께 앞으로 환자에게 있어 어떤 치료 방침이 최선일지를 논의하고 시행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가족과 대리인은 (또 참여 할 수 있다면 환자 본인도)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호스피스를 받기로 결정하기도 하고, 변함없이 계속 치료를 지속하자 결정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사람 수 만큼 많은 인생과 또 목표가 있으므로, 의사의 역할은 객관적인 의료적 정보 (환자 예후 등에 관한)를 제공하는 데 그치고, 무엇이 환자 본인에 있어 최선일지 결정하는 일은 가족과 환자 본인의 손에 맡기게 된다.
당연하지만 쉬운 논의는 아니다. 우선 예후에 관해 나쁜 소리를 해야하는데 이 부터가 쉽지 않다. 의과대학 과정에서 나쁜 소식을 어떻게 전하는지에 대해 배우지만 실제 현장은 연습했던 환경과는 다르므로, 대원칙을 지키는 전제 하에 다양한 방식으로 소식을 전하게 된다. 병동에서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심정지 이후 발견되어 일주일 넘게 자극에 반응이 없어 저산소성 뇌손상 (anoxic brain injury)가 의심되는 환자의 회복이 어려울 거라는 이야기를 환자 가족에게 건낸 적이 있다. 이렇게 장기간 반응이 없는 경우에는 호스피스 치료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그런데 거짓말같이 환자가 다음 날부터 반응을 보이더니 끝내 의식을 되찾고 퇴원했다. 몇 주일 후 그 환자와 가족을 외래에서 만났을 때의 그 심정은 기쁘면서도 참 오묘했다.
이런 goals of care discussion이외에도 나쁜 소식을 전해야 할 일은 많다.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 앞으로 장기간 약을 달고 살아야 하는 만성 질환의 발견에서부터, 면역 저하 질환이나 암과 같은 치명적인 질환까지 싫은 소리를 할 일은 정말로 많다. 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사실을 가장 잘, 충분한 배려와 함께 전달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 될 거 같다. 이번 병동 로테이션에도 이런 소식을 전할 일이 왕왕 있었는데, 더 잘 사실을 전달 할 수 있었을 거란 생각도 계속 든다. 앞으로는 익숙해질까? 잘 모르겠다. 많은 연습이 필요한 부분이다.
해당 카테고리 다른 글 보기
더보기 →뉴욕 주 교외 지역 여행기
단풍이 본격적으로 들기 전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들
파이프라인 설정 실험
과연 파이프라인은 잘 동작 할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Jekyll 블로그 본격적으로 만들기
다중 언어 지원 블로그 기획 1일차; 맨땅에 해딩은 재밌지만 동시에 못 할 짓이기도 하다. 대가리에서 피나욧!